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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저모/내 소설 이야기

늦은 점심 기상

by 게임고래 2021.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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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후우...."

 

천 원 상점에서 사온 값싼 2000원짜리 블라인드.

그 값어치를 하듯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온 햇볕은 생각보다 더 따가웠다.

 

'오늘도 늦게 일어났네'

 

일찍 들지 못한 잠의 휴유증인지 늦은 점심 시간이 넘어서야 나를 깨웠다.

 

'어쩌다 또 늦게 잠들었지....?'

 

멍하니 앉아 이유를 찾아본다.

 

'전날 마신 커피 때문이려나, 아니면 늦게먹은 저녁이 속을 더부룩하게 만든건가?, 아니면...'

 

이유를 찾고 인던 난 항상 정해져 있던 답을 되새김질 했다.

 

'뭐긴. 잠들기 전 후회와 핑계의 경계선에서 망상에 빠져 허우적 거려서지 뭐..'

 

항상 그랬다.

이미 지나간 시간과 사건을 붙잡고 '이 경계선'에서 무엇이 더 옳았을까 하는 쓸모없는 생각과,

이런 쓸모없는 생각을 뒷받침할 변명까지 구구절절 생각하니 잠에 들 수 있을리가 없었다.

 

'아... 속 쓰려.. 핑계로 성공한건 김건모 뿐이라더니 킥킥'

 

꼰대 아저씨나 좋아할법한 개그로 분위기를 전환하려 했다.

쓰린 건 내 위장인게 분명했지만 그것만이 아닌 듯 입안이 깔깔했다.

 

'염병할'

 

잠들기 전 늦게까지 본 SNS, 그 안에 잘나가는 친구들의 모습은 날 더 쓰리게 만들었다.

 

'괜히 인스타그램은 켜서.. 멍청한 놈'

 

같은 시간대에 항상 하는 패턴, 내 불면증의 원인 중 하나겠지만 그것 뿐 만은 아니라는건 불보듯 뻔했다.

 

"에휴.. 뭐하고 있냐.. 물이나 마시자"

 

따뜻한 이불 안은 정말 강한 유혹이었지만 목마름이 더 강한 유혹이기에

부드럽고 따뜻한 이불이란 마수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을 쳤고, 그 마수는 보내주기 싫은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요즘 미세먼지가 심한가..? 눈이 따갑네"

 

내 따가움의 원인은 늦게까지 본 SNS의 영향이 확실하지만 난 또 다른 핑계를 대며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물을~ 냉장고~에~ 넣어 놨나~"

 

나이를 한 살씩 더 먹을수록 늘어난 건 몸무게와 주름, 그리고 의미 없는 흥얼거림.

아저씨가 되어간다는 증거가 확실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나 좋다고 따라다니는 건 여름철 모기와 나이밖에 없었으니.

 

"아아악!!!"

 

멍청했다. 평상시와 비슷하게 멍청했다.

방문을 열고 물을 마시기 위해 냉장고로 가던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아무 생각 없이 눈을 비비고 있었고.

애써 울적했던 분위기를 환기하려 흥얼거리던 콧노래는 짧은 비명 소리가 되어 작은 방을 울렸다.

 

"아오!!! 내 발가락!!"

 

아팠다. 눈물이 찔금 날 정도로 아팠다.

이미 익히 알고 있었다.

냉장고의 내구도는 내 새끼발가락의 내구도보다 아득히 높다는걸.

내 멍청함은 불필요한 실험을 진행하게 끔 만들었고 이미 검증된 결과를 부정하려 몸부림 쳤지만 다윈상을 표창 받을 수 있을 법한 나의 어리석음을 증명해버렸다.

 

'시부럴'

 

발가락이 아파 쭈그려 앉아 있던 난 그냥 그 상태로 털썩 주저 앉았다.

물을 마시기 위해 열었던 냉장고에서 보이는.

전날 옆 건물 편의점에서 얻어온 폐기 삼각김밥과 커피우유

점심을 때울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녀석 들이었지만 이젠 너무 미워 보였고.

그런 내가 너무 서러웠다.

한심함, 부끄러움, 처량함과 두 가지 속 쓰림.

이 모든 상황은 마치 한 겨울 차가운 공기처럼 날 휘감았다.

시리도록 날카로운 추위였다.

역설적이게도 찔끔 나온 눈물은 너무 뜨거웠다.

 

"아... 후우..."

 

난 내일도 늦게 일어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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